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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4일
도무지 일의 진도가 안 나가서 답답한 마음에 이글루스를 오랜만에 이 잡든 훑었다. 그리고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본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구성과 컨텐츠는 조악하다.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발간을 서두른 느낌이다. 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이 느껴지고, 그 안에서 몇 가지의 화두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미덕이다. 특히 그가 정치인의 가치와 소망을 언급하는 부분은, 사회적 책무를 안고 사는 이 땅의 일원으로서 품어야 하는 숭고한 "꿈"과 "가치"를 고민케 해준다. 나는 여기에 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답을 찾기 위한 제대로 된 경로에 서있는가. 설령 아니라면 표지판을 직시하고 되돌아갈 배포가 있는가. 2010년 01월 22일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다. 밀레의 작품처럼 땀 흘려 일하는 이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담뿍 느껴졌다. 일상에서 신묘한 통찰력을 도출하는 저자의 재주는 여전히 감탄스럽다. 저자의 말처럼 일은 나에게 피로를 안겨 주지만, 위안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나에게 지금의 일은 그리고 BCG라는 직장은 젊음과 그 안에서 잉태될 추억을 담보 삼아, 그것을 이연시키고 대신 '성장'이란 가치를 미리 대출받는 계약과도 같다. 시간과 역량에 비해 많은 대출금으로 인해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이자로 지불하는 셈이다. 이자는 변동 금리로 계산되는지, 금리는 갑자기 솟구쳐서 때론 일이 온전한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땐 지불해야 되는 이자의 규모에 심히 부담을 느낀다. 허나 꾸역꾸역 이자와 원금을 갚다보면, 어느새 추가적인 대출을 궁리하는 나를 발견한다. 역설적이지만, 이것 역시 일로 인해 얻게 되는 위안이라, 어쩌면 자위할 수 있으리라.
2010년 01월 15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시즌이 다시 찾아 왔다. <동경이야기>, <네이키드>, <디바인 대소동> 그리고 <열혈남아>를 예매했다. 예전부터 <네이키드>를 보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뿐만 아니라 <열혈남아>를 필름으로 접하지 못한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작품을 추천한 류승완 감독에게 고마운 심정이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 덕분에 하루 하루가 더 값지게 여겨지리라. 2010년 01월 14일
건전 보수 우익 청년의 일대기를 그려 보겠노라는 장정일의 포부는 일견 성공하였다. 물론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과 살을 부대끼는 내 입장에서는 저자가 아직 색안경을 끼고 보수를 보고 있단 노파심도 없진 않다. 허나 주인공 "은"은 아직 이십대 초반이다. 인생의 연륜이 더해짐에 따라, "은"은 보다 더 성숙하고 합리적인 보수 인사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읽기 쉬우면서 곱씹을 수 있는 문장을 쓰는 능력은 여전하다. 더 놀라운건 작품 속 사건과 소재마다 자신의 의도를 농밀하게 녹여낸 저자의 재주이다. 이건 내가 그의 직설 화법을 참으로 아끼는 것과는 별개의 미덕이다. 권위에 대한 작가의 적개심은 여전하나, 그것의 표현 방식은 확실히 누그러졌다. 그러나 밖으로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뿐, 저자의 문제 의식이 한층 더 깊어졌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다. 여러모로 말이다. 2010년 01월 03일
일주일 간 태국과 캄보디아를 여행했다. 방콕은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었기에 특별한 감흥은 없었지만, 앙코르와트를 위해 방문한 캄보디아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방콕에서 시엡립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등 짧은 일정이나마 예전의 배낭여행 기분을 느껴보고자 했는데, 도리어 인내심의 약화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지에서의 불편함에 대한 나의 감내 수준이 더 저하되기 전에, 인도와 중국 남부를 빠르게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인천 공항에서 수하물을 기다릴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년 전 이맘 때 즈음, 두바이에서 인천 공항으로 돌아와 짐을 찾던 도중에 친한 동생의 부고를 접했다. 별 생각 없이 맞았던 2010년이었는데, 친구의 안타까운 요절을 떠올리며, 현명하게 새해를 살겠노라 다시금 마음을 추스렸다. 2009년 12월 26일
내일부터 연초까지 여행을 떠나기에, 오늘 하나의 글을 더 남기고 싶다. 이십대의 마지막이자 삼십대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이다. 스무 살부터 스물아홉 살까지 지난 십년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 중 일부는 분명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 2009년 12월 26일
젊은 시절 접한 책이 그 사람의 평생 됨됨이에 혁혁한 기여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동서양의 명저를 섭렵해야 하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친 독서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무래도 삼십대에 접어들면 기 형성된 취향 및 목표 그리고 주위 환경에 부합하는 책으로만 기울기 쉬울테니깐. <청춘의 독서>는 열네 권의 저서를 통해 유시민의 가치관과 신념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그의 독서는 올곧은 깊이를 지녔지만, 넓이 측면에서는 확대의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그의 정치적 단점으로 지적되는 아량과 여유의 부재에 관한 논란을 잠재우는 데 도움을 주리라. 각설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역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는 거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에 대한 호불호의 논의로 발전하는 순간, 자신과 상대방과의 교집합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나 역시 생텍쥐페리, 도스토옙스키, 헤르만 헤세, 밀란 쿤테라, 아가사 크리스티, 장 보드리야르, 미셀 푸코, 무라카미 류, 김승옥, 고종석, 임지현 그리고 클레이튼 크리스텐슨과 짐 콜린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는 호감을 느끼는게 사실이다. 2009년 12월 19일
그런 토요일이 있다. 평소의 주말과 똑같이 점심 먹을 즈음에 눈을 떴는데, 그 어떤 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고 모든게 귀찮기만 한 그런 날이다. 한동안 멍하니 침대에 누웠다가, 옆에 놓여진 핸드폰으로 당일 일정을 확인한다. 둘이 만나기로 한 약속일 경우 문자로 취소하고, 그룹으로 만나는 약속이면 미안하지만 씹는다. 그리곤 어떤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을 하지 않는다. 이런 토요일이 일년에 두세 번 정도 찾아 온다. 거실의 소파에 널부러져서 텔레비전을 끼고 오후를 보낸다. 문을 열고 처음 밖에 나서는 때는 냉장고에 맥주가 없을 때다. 저녁에는 맥주와 오징어를 옆에 두고 술기운에 잠들 때까지 소설을 읽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다음 일요일에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진다. 그제서야 핸드폰을 켜고 전날 들어온 문자를 확인한다. 연락이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이들에 대한 사과 답문도 늦게서야 전한다. 그리고는 밖에 나서 쇼핑을 즐기며 주말을 마무리한다. 바람직한 일과는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꽤 위안을 안겨주는 주말이다. 오늘이 이와 같은 날이었다. 점심 약속, 저녁 약속, 심야 모임에 불참했다. 케이블에서 하는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며 킥킥 거리다가, 지금은 기네스를 마시며 자동차 구매 사이트를 보고 있다. 조금 있다가는 밀린 <GQ>와 김훈과 장정일의 신작을 읽을 요량이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든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연애는 가능하겠지만 이런 내 모습을 평생 받아주고 이해해줄 여성을 만날 수 있을까? 결혼 이후에도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배우자를 배려하지 않는 주말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만은 조금은 불안하고 우울한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나를 바꿀 생각은 없다. 2009년 12월 01일
두 번째로 <파주>를 보았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미덕으로 지목하는 철거 반대 투쟁 관련 내용들이 나에겐 편치 않았다. 철거 시퀀스가 중식(이선균 역)과 은모(서우 역)에 대한 몰입을 방해해서가 아니다. 세대가 다르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반문했지만, 내가 그 정도로 우측을 향해 걷진 않았으리라. 철거 반대 투쟁을 통해 스스로의 구원을 찾으려는 중식의 속내와 내면의 아픔이 보였기에, 나는 불편했다. 원죄 의식에 따른 상흔을 지우지 않고 ("지우지 못하고"가 아닌) 살아가는 그에게서 안쓰러움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낀 셈이다. 속죄 의식 혹은 책무라는 (본인이 규정한) 허울에서 벗어나서, 그가 진실된 삶을 영위한 적은 선배의 아내인 첫사랑 여인과의 섹스와 처제인 은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의 몸을 탐하려던 순간이 유일하다. 중식은 그 두 번의 찰나를 위해 어쩌면 평생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가두었다. 반면 은모는 사뭇 다른 삶을 산다. 그녀는 관심과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인정이 아닌 도피를 택한다. 그녀는 언젠가 다시 중식을 찾아갈 거다. 설령 중식이 먼저 그녀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건 그녀가 의도한 것과 진배없다. 그녀는 중식에게 있어 구원을 의미하고, 역시 은모에게 중식은 그녀의 삶에 '성숙'이란 가치를 부여하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과도 같은 존재이다. 나에게 <파주>는 보기 드물게 농도 깊은 종교 영화였다. 박찬옥 감독에게서 홍상수를 찾으려는 시도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그 누군가의 아류로 절대 치부될 수 없는 보석같은 사람이다. 2009년 11월 25일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거장이면서도 상업적 책무를 견지하는 감독이며, 이는 <브로큰 임브레이스>에도 여지 없이 드러난다.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어느 정도 걷어낼 수 있는 이런 작품들이 한국에서 보다 더 많이 상영되고, 관객과의 접점을 넓혀 나갔으면 좋겠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평범한 치정극이다. 그러나 첨예한 갈등을 묘사하는 방식, 불륜과 집착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통속성을 넘어서는 우아함, 아찔한 시각적 쾌감과 탄탄한 드라마의 균형 등은 <브로큰 임브레이스>가 우리가 쉽게 접하는 멜로 드라마와 확연히 구분되는 이유다. 알모드바르의 예전 작품들에 비해 감동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는 파격적인 미학이 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그의 행보는 비록 소품에 불과한 작품일지라도 결코 녹록치가 않다. 덧붙이자면, 페넬로페 크루즈의 치명적인 매력은 이 영화의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다. 알모드바르의 연출력에 비견될만한 관람 포인트다. 진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