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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26일
원래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했다. 대단히 좋은 영화다. 이변이 없는한,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 못내 어색하다. 내가 가장 열을 내며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은 내가 지지하는 영화를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인데, 근데 그게 지금은 참 어렵다. 나도 인식하지 못한 부채 의식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었나보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이란 이름이 처음 각인된 것은 고종석의 책을 통해서였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문장을 쓰는 고종석의 책에서 그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노무현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가장 지지했던 정치인은 김근태였다. 아직 노무현의 '바보' 이미지가 강화되기 전이었고, 그저 야권 내에서 보기 드문 경상 지역 정치인으로 인식될 따름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진중한 이미지의 김근태를 좋아하던 나에게는 조금 다른 chemistry를 보유한 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고종석씨가 좋아하는 정치인이라길래, 나도 관심을 갖고 그의 행보를 주목하게 되었다. 노무현이 내게 '의미'로 다가왔던 순간은 바로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중 광주 경선에서였다. 그의 승리는 이변이었다. 그는 구성진 경상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한화갑과 이인제를 제치고 그가 승리한 순간은 나에게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이성이 형성되는 주요 시기인 학창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광주에 적을 둔다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 적은 많지 않았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광주가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해태 타이거즈'가 아구계에서 군림하던 그 시절 뿐이었다. 행복의 그늘이 넓지 않은 도시였다. 그런 광주가, 노무현을 지목했다. 해묵은 지역감정의 굴레에서 고통을 겪은 광주가 경상도 사나이 노무현을 선출했다. 힘과 권력을 추종하지 않고, 망국적 지역감정 해소에 자신을 던진 노무현을 믿어준 것이다. 아마 나에게도 피해 의식 혹은 두려움으로 점칠된 지역 감정이 내재화되었을지 모른다. 허나 광주의 포용으로 인해 나 역시 치료를 받은 느낌이다. 이런 도시를, 이런 시민을, 내가 더 이상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실로 찬란했던 한국 정치사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노무현이 있었다. 이후 노무현은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되었으며, 평탄하지 않은 임기를 마치고 봉화마을로 돌아갔다. 나는 '경제적 보수, 정치/문화적 진보'라는 애매한 성향을 내세우며, 그를 비판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그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말하지도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반성에서 우러난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 역시 미미하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온전한 내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이 생긴다. 본인이 믿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나 역시 내가 추구하는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진하며 결국에는 그 정점에 서고 싶다. 향후 나의 실천에 가속도가 생긴다면,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도움일테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p.s.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대사처럼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딱 아는 만큼만 아는" 척해야 했다. 근데 다들 그걸 못했고, 그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건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했던)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질책을 아끼지 않겠다. |